2011년 8월 25일 목요일

아가야 (천상병)

해뜨기 전 새벽 중간쯤 희부연 어스름을 타고 낙심을 이리저리 깨물며
사직공원길을 간다. 행도 드문 이 거리
어느 집 문밖에서 서너 살 됨직한 잠옷 바람의 앳된 계집애가 울고 있다.
지겹도록 슬피 운다.
지겹도록 슬피 운다.
웬일일까?
개와 큰집 대문 밖에서 유리 같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
이 애기는 왜 울고 있을까?
오줌이나 싼 그런 벌을 받고 있는 걸까?
자주 뒤 돌아보면서
나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.
아가야 왜 우니?
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?
무슨 슬픔 당했다고
괴로움이 얼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?
이 새벽 정처없는 산길로 헤매어가는
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
아가야, 너에게는 그 문을 곧 열어줄 엄마 손이 있겠지.
이 아저씨에게는 그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.
아가야 울지 마!
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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