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011년 8월 25일 목요일

막걸리 (천상병)

나는 술을 좋아하되
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.
막걸리는
아침에 한 병(한 되) 사면
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
생각날 때만 마시니
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.
맥주는
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
오백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
마누라는
몇 달에 한번 마시는 것도 마다한다.
세상은 그런 것은 아니다.
음식으로
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
다만 이것뿐인데
어찌 내 한 가지 뿐인 이 즐거움을
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.
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
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
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.
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.
즐거움은 인생의 최대 목표이다.
막걸리는 술이 아니고
밥이나 마찬가지다.
밥일 뿐 아니라
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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